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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소디 인 블루_조지 거슈윈

1924년 2월 12일 뉴욕의 에올리언 홀, ‘현대음악의 실험(An Experiment in Modern Music)'이라는 제목이 붙은 음악회에서 [랩소디 인 블루]가 초연되었다. 거슈윈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폴 화이트먼이 지휘하는 그의 악단이 연주를 맡았던 [랩소디 인 블루]는 피아노 솔로와 재즈 밴드를 위한 곡으로, 클래식 음악의 요소와 재즈로부터 받은 영향을 결합한 새로운 시도로 주목 받았다. 한때 변진섭이 노래한 가요 ‘희망사항’(노영심 작사 작곡) 마지막 부분,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도 등장해 친숙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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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아티스트 & 연주
1 랩소디 인 블루 / 레너드 번스타인[피아노 & 지휘],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2월 19일 자로 1분감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재즈왕’이란 별명을 지녔던 오케스트라 지휘자 폴 화이트먼은 1922년 거슈윈의 1막짜리 오페레타 [블루 먼데이 Blue Monday]를 보고 거슈윈의 재능을 발견했다. 화이트먼은 거슈윈에게 상업적으로는 실패작이었던 이 작품을 새롭게 편곡할 것을 권유했다. 거슈윈 자신도 편곡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폴 화이트먼과 그의 오케스트라는 그보다 몇 개월 전인 1923년 11월 1일 에올리언 홀에서 프랑스계 캐나다 가수인 에바 고티에와 클래식과 재즈를 결합한 실험적인 콘서트에서 꽤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성공에 고무된 폴 화이트먼은 좀 더 야심적인 시도를 감행하기로 하고 거슈윈에게 ‘협주곡 형식의 재즈 작품’을 의뢰하며 1924년 2월에 무대에 올리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거슈윈에겐 여전히 작품을 편곡할 시간이 없었다.

 

 


협주곡 형식의 재즈 작품을 작곡하다

1924년 1월 3일, 맨해튼 브로드웨이에서 조지 거슈윈과 버디 드 실바가 당구를 치고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조지 거슈윈의 형인 아이라 거슈윈은 1월 4일자 <뉴욕 트리뷴>지를 읽고 있다가 어느 대목에 시선이 머물렀다. ‘미국음악이란 무엇인가?(What Is American Music?)’라는 제목으로 펼쳐진 화이트먼의 콘서트 리뷰 기사였다. 마지막 단락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조지 거슈윈은 재즈 협주곡을 작곡 중이고, 어빙 벌린은 싱커페이션(당김음)을 쓴 교향시를, 빅터 허버트는 [미국 모음곡]을 작곡하고 있다.” “이봐, 조지, 이것 좀 보라구. 지금 재즈 협주곡 작곡하고 있는 것 맞아?”

 

다음날 화이트먼과 통화하면서 거슈윈은 화이트먼의 라이벌인 빈센트 로페스가 재즈와 클래식을 융합하는 자신의 실험을 표절해서 선수를 치려고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거슈윈은 마침내 작품을 쓰기로 결심했다.

 

남은 시간은 단 5주. 거슈윈은 서둘러 작품을 썼다.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랩소디 인 블루]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1931년 거슈윈은 그의 첫 전기 작가인 아이작 골드버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곡가 조지 거슈윈. 재즈와 클래식의 독창적인결합을 시도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곡가 조지 거슈윈. 재즈와 클래식의 독창적인
결합을 시도했다.

 

“그건 기차 안이었다네. 열차 바퀴가 선로 이음새와 마찰하는 덜컹거리는 소리는 종종 작곡가들에겐 좋은 자극이 되지. 종종 큰 소음이 나는 가운데서 음악을 듣곤 하네. 거기서 갑자기 [랩소디 인 블루]의 구조가 처음부터 끝까지 번쩍 하고 떠올랐지. 마치 악보에 적혀있는 것 같았다네. 다른 주제는 어떤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 주제 선율은 이미 마음에 있었고 전체로서의 작품을 파악하려고 했다네. 그건 마치 미국을 묘사하는 음악적 만화경이나 다름없었지. 거대한 용광로와 같은,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는 미국적인 기운이랄까. 블루스라든지 도시의 광기 같은 것 말일세. 보스턴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겐 어떻게 써야할 지에 대한 명확한 계획이 서 있었던 거야.”

 

 

 

미국을 묘사하는 거대한 음악적 만화경, 미국적인 기운

1월 7일 거슈윈은 작곡을 시작했다. 원래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이었던 이 작품에 붙였던 제목은 ‘아메리칸 랩소디’였다. ‘랩소디 인 블루’라는 명칭은 형 아이라 거슈윈이 조지에게 제안한 것으로, 아이라 거슈윈은 미국의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전시회에서 [검은색과 금색의 녹턴: 떨어지는 불꽃], [회색과 검은색의 구성](‘화가의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진 작품) 등을 관람하고 명칭이 떠올랐다고 한다. 몇 주 뒤 거슈윈은 작곡을 마치고 화이트먼의 편곡자 퍼디 그로페(Ferde Grofé)에게 넘겼다. 훗날 [그랜드 캐년 모음곡]으로 유명한 작곡가가 되는 그로페는 초연을 불과 여드레 앞둔 2월 4일 오케스트레이션 작업을 마쳤다. [랩소디 인 블루]는 1924년 2월 12일, 폴 화이트먼과 그의 오케스트라(Palais Royal Orchestra)가 ‘현대음악의 실험(An Experiment in Modern Music)’이란 제목으로 에올리언 홀에서 개최한 오후 콘서트에서 초연됐다. 초연은 화이트먼 밴드에 객원 현악 주자들을 보강한 가운데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 연주로 진행됐다. 초연 악보에서 거슈윈은 화이트먼과 합의하여 1페이지 가량을 비운 채 진행했다. 그로페가 쓴 총보에도 ‘(피아니스트가) 고개를 끄덕이면 그때 연주를 계속한다’는 부분만 적어 놓았다. 이 공백 부분을 거슈윈은 즉흥으로 연주했는데, 공연이 끝난 이후에도 피아노 즉흥 연주 부분을 따로 적지 않았기 때문에 초연 당시 [랩소디 인 블루]가 어떻게 연주됐는지 정확히 아는 것은 힘들게 되었다.

 

[랩소디 인 블루]는 미국적인 기운, 블 루스, 도시의 광기 들을 표현한 음악이다. 사진은 맨하탄의 스카 이라인

[랩소디 인 블루]는 미국적인 기운, 블 루스, 도시의 광기 들을 표현한 음악이다. 사진은 맨하탄의 스카 이라인

 

 

그렇다면 왜 콘서트명에 ‘실험’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화이트먼에 의하면, 당시 실험은 클래식 음악 평론가와 지식인들 앞에서 하는 프리 콘서트 렉처(공연을 앞두고 미리 작품에 대해 해설하는 강의)를 위한 것으로 “순수하게 교육적인 목적”을 띄고 있었다. “대중이 클래식 음악을 쉽게 이해하고 교향곡과 오페라를 즐기게 하기 위한 초석을 마련”하기 위한 것, 쉽게 말해 클래식 음악 대중화를 위한 시도였다. 상당히 긴 프로그램이었다. 독립된 악장 수만 약 26개에 이르고 11개의 섹션으로 구분되었다. ‘재즈의 진정한 양식’이나 ‘대비 : 정통 기보법과 즉흥연주’ 등등 각기 붙은 제목들도 다양했다. 거슈윈의 작품은 뒤에서 두 번째 순서에 소개됐다.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바로 전이었다. 당시 에올리언 홀의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다. 많은 작품들이 서로 비슷비슷하게 들렸고, 홀의 환풍기도 고장난 상태였다. 청중들은 점차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백만 장 넘게 팔려나간 음반, 클래식 대중화를 시도한 ‘실험’

바로 그때 [랩소디 인 블루]의 도입부인 글리산도(음에서 음으로 미끄러지듯이 연주하는 것)로 연주하는 클라리넷 선율이 들려왔다. 청중들의 눈은 갑자기 초롱초롱해졌다. 작품은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오늘날까지도 인기를 잃지 않고 있다. 이 도입부의 유명한 클라리넷 글리산도는 리허설 중에 탄생했다고 한다.

 

화이트먼 밴드의 클라리넷 연주자인 로스 고먼이 연습의 오프닝 부분에서 거슈윈에 대해 장난하는 의미로 유머러스한 터치를 가미해서 연주했던 것. 거슈윈은 이에 호응하여 고먼에게 오프닝 부분의 연주를 부탁하며 “좀더 울부짖는 듯이 연주해줘.”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1927년 말까지 화이트먼의 악단은 [랩소디 인 블루]를 84차례나 연주했다. 레코딩은 백만 장이 넘게 팔려나갔다. 나중에 화이트먼은 이 작품을 아예 악단의 테마곡으로 삼아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모든 것을 새롭게, [랩소디 인 블루]만 빼고”는 이 프로그램의 슬로건이었다. 한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누구보다도 이 곡을 좋아했지만 하나의 작품으로서는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번스타인은 이 곡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피아노 앞에 앉은 프랑스의 작곡가 라벨(가운데)과 거슈윈 (맨 오른쪽).거슈윈은 라벨을 존경해 자신의 스승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피아노 앞에 앉은 프랑스의 작곡가 라벨(가운데)과 거슈윈 (맨 오른쪽).
거슈윈은 라벨을 존경해 자신의 스승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는 각각의 서로 붙은 악절을 묶은 것에 가깝다. 그러나 주제 선율은 탁월하다. 영감이 느껴지고,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구상에서 차이콥스키 이후 최고의 천부적인 멜로디들이 아닐까. 그러나 작곡가에 대해서 얘기한다면 다른 문제다. [랩소디 인 블루]는 하나하나의 악절이 필수불가결하게 수립돼 있다고 볼 수 없다. 몇 개의 악절을 삭제한다고 해도 예전과 다름없이 진행될 수 있는 곡이다. 5분짜리로 만들수도, 12분짜리로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렇게 연주가 되고 있으며 그들 모두가 [랩소디 인 블루]이다.”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공연차 미국에 왔을 때 거슈윈은 자신의 스승이 되어 달라고 라벨에게 요청했다. 라벨은 “당신은 저절로 샘처럼 솟아나는 듯한 멜로디를 가진 사람이다. 일류의 거슈윈이 되는 편이 이류 라벨이 되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하고 거절한 일화도 유명하다. 거슈윈의 천부적인 멜로디에는 20세기 거장 지휘자 라벨도 공감했던 것이다. 초연 당시 ‘재즈왕’이라 불렸던 폴 화이트먼은 이 곡을 재즈라고 선전했지만, 훨씬 다양한 요소들이 클래식 음악에 스며들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는 [랩소디 인 블루]를 클래식 음악으로 보아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류태형 / 전 <객석> 편집장, 음악 칼럼니스트
월간 <객석> 편집장 역임, 현재 (재)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 신윤주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KBS 클래식 FM [출발 FM과 함께] 중 '류태형의 출발 퀴즈' 코너를 통해 매일 아침 8시 출근길 청취자들과 만남을 갖는다. 거장들의 옛 음반과 생생한 공연의 현장이 반복되는 삶이 마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같다고 생각한다.


발행일 
2010.02.10

이미지 TOPIC / corbis

음원 제공 소니 뮤직

 

 

 

 

출처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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