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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풀어보는 '음악용어 메뉴판'_음악용어 여행

“따다다 단!”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응축한 듯한 베토벤의 [교향곡 5번] Op.67의 첫 소절. 베토벤은 이에 대해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고 제자인 쉰틀러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운명이니 뭐니 알 바 아니다. 이것은 알레그로 콘 브리오일 뿐이다.”라고 이 “따다다 단!”에 대해서 말했다. 작곡가가 쓴 악보 이상의 해석도 이하의 해석도 없을 뿐, 그것을 오롯이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그래. 고집쟁이 할아버지 토스카니니가 옳다 치자. 괜히 거슬러서 좋을 것 없어 보이는 근엄하신 표정이다. 기꺼이 양보하듯 알레그로 콘 브리오라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알레그로 콘 브리오가 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마르게리타 피자처럼, 봉골레 스파게티처럼 입가에 맴도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탈리아어다. 클래식 음악에는, 그 작곡가가 독일 사람이든 프랑스 사람이든 영국 사람이든 이탈리아어가 깊게 스며들어 있다. 왜 그럴까.

 

 

 

클래식 음악에 이탈리아어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한때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기 때문이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는 서양 클래식 음악이 발달하는 역사적인 선상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 이후까지도 음악의 중심지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프랑스 작곡가들의 등용문이었던 ‘로마 대상’은 원래 미술과 건축 부문만 상을 주다가 19세기 음악 부문이 생겼는데, 로마에 유학해서 이탈리아의 바람을 쐬며 공부할 수 있는 것이 대단한 특전으로 여겨졌다. 베를리오즈, 구노, 비제, 드뷔시 등이 혜택을 입었다.

 

또 클래식 음악에서 이탈리아가 쥔 헤게모니는 종교적인 데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잘 알다시피 서양음악은 기독교와 함께해 왔다. 비록 종교가 없다 하더라도 작곡가들의 아우라가 배어 있는 숭고한 종교음악을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된다. 종교적인 면에서도 교황청이 있는 로마, 즉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가장 문화적이고 음악적인 곳이라는 유리한 입지를 가졌다는 점을 알 수가 있다. 수적인 우세도 한 요인이다. 이탈리아는 자국 출신의 음악가들을 많이 배출했고, 많은 작곡가들이 이탈리아어를 사용했으므로 악보상에도 이탈리아어 용어가 많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이탈리아는 최초의 오페라 발상지이기도 하다. 클래식 음악에서 예전부터 오페라나 가곡의 가사로 이탈리아어로 씌어졌고 오라토리오를 비롯한 종교음악들의 가사도 전부 라틴어 혹은 이탈리아어로 썼다가, 종교개혁 이후 서서히 코랄과 같은 자국어로 된 음악형식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화가 로렌초 코스타가 그린 [콘서트], 1485-1495이탈리아는 오랫동안 서양문화의 중심지였다

이탈리아 화가 로렌초 코스타가 그린 [콘서트], 1485-1495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서양문화의 중심지였다

 

그렇다면 고전파와 낭만파를 수놓은 수많은 독일의 작곡가들은 ‘허당’이었나? 물론 아니다. 독일어를 쓰는 작곡가들의 수가 늘면서 독일어로 된 용어도 다수 생겨나게 된다. 요컨대 음악용어란 단지 작곡가가 어떤 언어를 쓰는가, 그리고 그 시대에 어떤 언어를 쓰면 많은 사람들이 작곡가의 의도를 알아볼 수 있었는가의 문제로 이탈리아어가 많을 뿐이다. 프랑스가 혁명 국가였고 전세계에 그 힘을 떨쳤기에 정치, 경제, 외교 용어로 프랑스어를 많이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이탈리아 음식 덕에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메뉴판에서 생소한 이탈리아어를 읽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클래식 음악 애호가로 향하는 길모퉁이에는 늘 교통 표지판처럼 이탈리아어가 눈에 띄게 마련이다.

 

 

 

피자, 파스타 메뉴판을 읽듯이 음악용어도 쉽게 읽을 수 있다!

다시 이야기를 “알레그로 콘 브리오일 뿐이다!”로 돌리자. 토스카니니가 아무리 뭐라 해도 나는 [교향곡 5번]에 붙은 ‘운명’이라는 이 표제 아닌 표제가 참 좋다. 뭔가에 얻어맞은 듯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해이해지고 될 대로 되라던 풀어진 나사같던 마음을 닦고 조인다. 거기에 기름을 치고 긴장감을 다시 북돋우는 훌륭한 음악이다.

 

베토벤 [교향곡 5번]에는 암흑에서 광명으로 나아간다는 직선적이고 발전적인 서구의 세계관이 단순하지 않게, 함축적으로 제시돼 있다. 영화 ‘영어 완전정복’의 주인공이 된 기분으로 베토벤 [교향곡 5번] Op.67(‘작품 육십 칠’로 읽는다)의 ‘이탈리아어 완전정복(까지는 아니더라도 맛보기라도 어디인가)’에 첫 걸음을 떼어보자.

 

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Allegro con brio)
알레그로(Allegro)는 ‘빠르고 경쾌하게’라는 뜻이고 콘 브리오(con brio)는 ‘기운차고 활발하게’라는 뜻이다. 결국 ‘운명’ 1악장은 빠르고 경쾌하고 기운차고 활발하게 연주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2악장 안단테 콘 모토(Andante con moto)
안단테(Andante)는 느리게 연주하라는 말이다. 모데라토와 아다지오의 중간 속도로, 걷는 정도의 속도라고 할 수 있다. 콘 모토(con moto)는 ‘생생하게’ 또는 ‘움직임을 가지고 약간 빠르게’ 연주하라는 말이다. 결국 안단테 콘 모토는 안단테보다는 조금 빠르게, 활기있게 연주하라는 지시어다.

 

3악장 알레그로(Allegro), 4악장 알레그로
앞서 1악장에서 설명이 됐다. 빠르고 경쾌하게.


이탈리아 음식 메뉴판 읽듯이 클래식음악 용어도 친근하게 느껴보자

이탈리아 음식 메뉴판 읽듯이 클래식음악 용어도 친근하게 느껴보자

 

자, 이제는 베토벤에 이후에 위대한 교향곡을 쓴 작곡가들의 작품을 살펴보자. 다음은 프란츠 슈베르트의 마지막 [교향곡 9번 그레이트] D(도이치 번호)944의 악장들이다.

 

1악장 안단테 ;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Andante ; Allegro ma non troppo)
안단테는 이미 언급했듯 ‘느리게’, 그리고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는 ‘빠르지만 지나치게 빨라선 안 된다’는 뜻이다.

 

2악장 안단테 콘 모토(Andante con moto)
‘운명’ 2악장과 같은 뜻이다.

 

3악장 스케르초 : 알레그로 비바체(Scherzo : Allegro vivace)
스케르초(Scherzo)는 ‘익살스럽고 해학적이고 분방한’ 등의 뜻을 갖고 있다. 알레그로 비바체(Allegro vivace)는 ‘빠르고 생기있게’  연주하란 뜻이다.

 

4악장 피날레 : 알레그로 비바체(Finale : Allegro vivace)
피날레(Finale)는 음악에서 한 악장의 마지막에 붙는 ‘종곡’을 의미한다.

 

이어지는 작곡가는 역시 베토벤의 후계자로 불린 요하네스 브람스이다.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브람스 [교향곡 1번]에 대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잇는,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이라고 한 말은 유명하다. 브람스의 음악은 북독일 출신답게 우리나라 늦가을과 초겨울의 정취와 잘 어울린다. 다음은 브람스 [교향곡 1번] Op.68의 악장들이다.

 

1악장 운 포코 소스테누토 알레그로(Un poco sostenuto Allegro)
운 포코(Un poco)는 악보에서 ‘작게 연주하라’ 는 뜻이다. 소스테누토는 영어의 sustain(유지하다)과 마찬가지로 ‘소리를 충분히 끌면서 음을 그대로 지니고 연주’ 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빠르고 경쾌한 알레그로로 이어진다.

 

2악장 안단테 소스테누토(Andante sostenuto)
느리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는 2악장이다.

 

3악장 운 포코 알레그레토 에 그라치오소(Un poco Allegretto e grazioso)
긴 이탈리아어 조합이 나왔다. 그러나 거의 다 위에 언급한 내용이다. 작게 연주하는 운 포코 다음의 알레그레토(Allegretto)는 ‘조금 빠르게’ 연주하란 말이다. 즉 알레그로보다는 조금 느린 정도다(그럼 안단티노는 뭘까? 조금 느리게다. 안단테보다 조금 빠르게 연주하란 말이다. 하나를 배우면 둘을 안다!). 에(e)는 그리고(영어의 and)이고 그라치오소(grazioso)는 ‘우아하고 장엄하게’ 연주하란 뜻이다. 곡의 악장을 떠나 그라치오소는 참 멋진 말이다.

 

4악장 아다지오-피우 안단테-알레그로 논 트로포, 마 콘 브리오(Adagio-Piu Andante-Allegro non troppo, ma con brio)

아다지오는 느리게 연주하는데, 그 느림의 정도는 안단테와 라르고(아주 느리게) 사이에 위치한다. 피우(piu)는 ‘더’ ‘더욱’의 뜻이다. 따라서 피우 안단테는 ‘안단테보다 좀 더 느리게’, 알레그로 논 트로포는 ‘지나치지 않으면서 빠르게’ 연주하는 것이며, 마 콘 브리오는 ‘그러나 기운차고 활발하게’ 연주하란 뜻이다.

 

 

 

클래식음악을 감상하다 보면 음악용어도 메뉴판처럼 익숙해진다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데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용어다. 영어에는 익숙하더라도 이탈리아어는 상대적으로 생소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클래식음악을 감상할수록 이탈리아어 용어들은 피자의 메뉴처럼 익숙해질 것이다. 베토벤과 슈베르트, 브람스,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고전 낭만 작곡가들의 기둥처럼 우뚝 서있는 교향곡들에서 우리는 뿌리 깊은 클래식 음악의 오래 통용된 화폐같은 이탈리아어를 발견한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 특히 이탈리아 벨 칸토나 베리즈모 오페라 애호가들은 이탈리아 축구에 남달리 열광하기도 한다. 2002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도 비에리의 첫 골에 환호를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이건 거짓말이지만 다른 나라와 일전을 펼칠 때는 이탈리아를 응원했다). 계절이 바뀌려 한다. 위에 언급한 그라치오소(Grazioso)같이 우아하고 장엄하고 품위 있게 가을을 정리하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 이번 시간에는 클래식 음악 용어라는 바다에 잠깐 손을 담가 보았다. 짠 맛이 뇌리에 남는다. 클래식 음악용어 여행은 다음 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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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형 / 전 [객석] 편집장, 음악 칼럼니스트
전 객석 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는 음악 컬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신윤주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KBS 클래식 FM [출발 FM과 함께] 중 [류태형의 출발 퀴즈] 코너로 매일 아침 청취자들과 만나고 있다. 거장들의 옛 음반과 생생한 공연의 현장이 반복되는 삶이 마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같다고 생각한다.

 

출처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7&contents_id=1457&leafId=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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